
조선의 선비를 따라가는 여행은 대개 서원에서 끝나요. 그런데 서원 앞에 강이 하나 있고, 서원 뒤에 집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강에서 시작해 그 집에서 끝나요. 명종 때 단양군수로 온 이황이 남한강을 보고 시를 쓴 자리에서 출발해, 그가 돌아가 지은 도산서당, 제자들이 자리를 정한 병산서원, 왕이 피난길에 태웠다는 율곡의 정자, 대원군 때 살아남은 논산의 서원, 그리고 벼슬을 마다한 선비의 담 없는 집까지.
시간으로는 1548년께부터 1700년대 초까지, 150년쯤이에요. 지역은 단양·안동·파주·논산 넷. 한 번에 돌기엔 멀어서 아래 코스는 세 갈래로 나눴습니다. 각 도시의 나머지 명소와 맛집은 도시별 글에 있어요.
직접 다녀와서 쓴 글은 아니에요. 네 도시 글을 쓰면서 국가유산청과 문화대전 자료로 대조한 사실을 시대 순서로 다시 엮었습니다. 전설은 전설이라고 적었고, 지어낸 장면은 없어요.
먼저 요약하면
📌 정보 확인일 2026-09-16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한국관광공사 자료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 장소 | 위치 | 이런 분께 |
|---|---|---|
| 🏞️ 도담삼봉 | 단양 매포읍 | 이황이 시로 남긴 강 |
| ⛰️ 구담봉 · 옥순봉 | 단양 단성면 | 남의 땅을 단양으로 끌어온 사건 |
| 📜 도산서원 | 안동 도산면 | 1561 서당 → 1574 서원 → 2019 세계유산 |
| 🏛️ 병산서원 | 안동 풍천면 | 류성룡 · 1575 · 만대루 |
| 🎭 하회마을 | 안동 풍천면 | 류성룡의 고향 · 2010 세계유산 |
| 🔥 화석정 | 파주 파평면 | 율곡의 정자 · 1592년 밤 |
| 📖 돈암서원 | 논산 연산면 | 1634 김장생 · 2019 세계유산 |
| 🏺 명재고택 | 논산 노성면 | 윤증 1629~1714 · 담이 없는 집 |

남한강 한가운데 솟은 도담삼봉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44 (매포읍)
운영09:00~18:00 ※ 단, 시설별로 상이하므로 자세한 사항은 전화 문의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조선 명종 때, 한 학자가 단양군수로 내려옵니다. 퇴계 이황이에요. 훗날 천원권에 얼굴이 실릴 사람이지만 그때는 고을 원님이었죠. 그가 이 고을에서 제일 먼저 붙든 건 남한강 한가운데 솟은 봉우리 셋이었어요.
왜 강 한가운데에 저것만 남았을까요. 물에 잘 녹지 않는 성분이라서예요. 주변이 수억 년에 걸쳐 깎여 나가는 동안 이 셋만 버텼습니다. 이황은 시로 남겼고, 200년쯤 뒤 단원 김홍도가 그림으로 남겼어요. 가운데 봉우리에 얹힌 정자가 삼도정입니다.
출발은 여기예요. 선비 한 사람이 강을 보고 시를 쓴 자리에서 시작해, 그 선비의 서원까지 갑니다.

도담삼봉 · 사진 한국관광공사

충주호 물길에서 올려다본 구담봉과 옥순봉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산 31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옥순봉은 원래 단양 땅이 아니었어요. 청풍, 지금의 제천 소속이었죠. 군수 이황이 청풍부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옥순봉을 단양에 넣어 달라고요. ★ 답이 없었어요.
다시 조르기도 껄끄러웠던 모양이에요. 이황은 옥순봉 석벽에 글을 새겼다고 전해요. '단양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의 글자를요. 그렇게 남의 땅이 단양팔경에 들어와 있습니다. 편지로 안 되니 바위로 답한 셈이죠.
구담봉은 거북 등껍질 같다고 해서 구담(龜潭)이에요. 이황은 이 봉우리를 두고 중국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고 했어요. 두 봉우리는 유람선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고, 단풍철엔 예매 없이 배를 타기 어렵습니다.

구담봉 · 옥순봉 · 사진 한국관광공사

단풍에 둘러싸인 도산서원을 위에서 본 모습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운영- 2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11월~1월 09:00~17:00 (입장 마감 16:30)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단양을 떠난 이황은 고향 안동으로 돌아옵니다. 1561년, 안동호 가에 서당을 하나 짓는데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요. 도산서당. 여기서 지내며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서당 뒤를 둘러 서원을 세웠어요. 1574년 사당을 짓고, 이듬해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현판을 임금에게서 받았죠.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1975년부터 2007년까지 옛 천원권 뒷면에 들어갔던 게 이 서원이에요. 2007년 새 천원권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실렸는데, 한국은행이 처음엔 도산서당 그림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계상서당을 그린 그림】으로 설명을 바꿨어요. 어느 쪽인지 지금도 연구자들 말이 갈립니다.
서원 앞 물 한가운데 솟은 단이 시사단이에요. 1792년, 정조가 이황을 기려 이 자리에서 특별 과거를 치르게 했어요. 1974년 안동댐으로 물이 차오르자 10m 축대를 쌓아 비각을 그 위로 올렸고요. 둘째 사진이 그 모습이에요.
2025년 봄 산불 때는 불길이 20km쯤 떨어져 있었는데도 유물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기고 둘레 나무를 베어 방화선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다시 열려 있습니다.

안동호 물 가운데 축대를 쌓아 올린 시사단 · 사진 한국관광공사

만대루 마루에서 기둥 사이로 내다본 강 건너 산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운영- 하절기 09:00~18:00 · 동절기 09:00~17:00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뿌리는 고려 때 풍산에 있던 풍악서당이에요.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풍산을 지나다, 난리 중에도 공부하는 유생들을 보고 책과 땅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하죠. 200년쯤 지나 둘레에 집이 들어서고 시끄러워지자 유림이 물었어요. 어디로 옮길까요. 부친상으로 하회에 머물던 【류성룡】이 이 자리를 추천했습니다. 1575년이에요.
류성룡이 세상을 떠난 뒤 1614년 제자들이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셨어요. 대원군이 서원을 대부분 없앨 때도 살아남은 47곳 가운데 하나고요. 앞마당의 7칸 2층 누각 만대루에 앉으면 기둥 사이로 낙동강과 강 건너 병산이 한 칸씩 들어옵니다. 첫째 사진이 그 마루예요.
2025년 3월 26일 밤. 드론 열감지에 산불이 약 3km 앞까지 온 게 잡혔어요. 건물에 물을 뿌리고, 류성룡 위패를 옮길 준비까지 했습니다. 바람이 약해지고 방향이 바뀌었어요. 서원까지는 번지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 강가에 자리 잡은 병산서원 · 사진 한국관광공사

낙동강이 둥글게 감아 도는 하회마을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8
운영[하절기(4월~9월)] 09:00~18:00 - 입장 마감 17:30[동절기(10월~3월)] 09:00~17:00 · 입장 마감 16:30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요금 (무료)
병산서원 자리를 추천한 류성룡이 난 마을이에요. 하회(河回), 물이 돌아 흐른다는 뜻. 첫째 사진처럼 낙동강이 S자로 마을을 감아 돕니다. 풍산 류씨가 600년 가까이 모여 살았고, 1999년 4월 21일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찾아왔어요.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하회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1964년 국보가 됐고, 허도령이 깎았다는 전설을 근거로 고려 중기 것으로 봐요. 이매탈만 턱이 없는데, 허도령이 마지막 턱을 깎던 중 그를 사모하던 처녀가 금기를 깨고 엿보는 바람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붙어 있어요.
반전은 재료예요. 탈은 오래 '오리나무'로 알려졌는데, 국가유산청이 2021년 8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국보 지정 뒤 처음으로 과학 분석을 해 보니 【대부분 버드나무 종류】였거든요. 진품은 안동민속박물관에 있으니 전시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가세요.

가을 단풍 속 기와집과 초가가 섞인 마을 안 · 사진 한국관광공사

임진강 쪽으로 열린 화석정 — 현판에 '花石亭'이 보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화석정로 152-72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1592년, 임진왜란. 의주로 피난 가던 선조가 한밤중에 임진강을 건넙니다. 캄캄한 강. 그때 강가 벼랑 위 정자에 불을 붙여 길을 밝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그 정자가 화석정이에요. 1443년 율곡 이이의 5대 할아버지가 세운 정자였죠.
얄궂은 건, 그 정자의 주인이 율곡이었다는 거예요. 율곡은 왜구 침입에 대비해 군사 10만을 길러야 한다고 상소했지만 선조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그 왕이 그 신하의 정자를 태워 강을 건넜다고 전하는 거죠.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에요. 그래도 사람들이 이 정자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됩니다.
정자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80여 년 빈터로 남았다가 1673년 율곡의 증손들이 다시 세웠는데, 1950년 6·25 때 또 불탔거든요. 지금 건물은 1966년 파주 유림이 복원한 것이에요. 안에는 율곡이 여덟 살에 여기서 지었다는 시가 걸려 있습니다.

율곡의 시를 새긴 '화석정시' 비석 너머로 임진강 들판이 펼쳐집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높은 누마루를 올린 돈암서원 강당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1634년, 논산 연산에 서원이 하나 섭니다. 김장생을 기려 세운 돈암서원이에요. 뒤에 김집·송준길·송시열까지 네 사람을 모셨죠. 병산서원과 이 서원 사이에 흐른 시간이 60년쯤이에요. 영남의 서원과 호서의 서원이 그렇게 이어집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전국 서원을 정리합니다. ★ 600곳 넘게 헐렸어요. 남은 건 47곳. 병산서원이 그중 하나였고, 여기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2019년 '한국의 서원' 아홉 곳이 세계유산이 될 때 충청권에서는 돈암서원 하나가 들었어요. 강당 응도당은 보물입니다.
첫째 사진의 높은 누마루가 그 강당이에요. 둘째 사진의 태극 무늬 사당 문 앞에 서면, 도산에서 시작한 이 코스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한 번에 보입니다.

태극 무늬를 그린 사당 문 · 사진 한국관광공사

명재고택 앞마당에 줄지어 선 장독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노성면)
운영[하절기] · - 10:00~17:00 · [동절기] · - 10:00~16:00
쉬는 날매주 월요일
주차가능
끝은 집이에요. 서원이 아니고요. 명재 윤증(1629~1714)의 집. 그는 우의정에 오르고도 끝내 나가지 않았어요. 임금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삼정승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18세기 초 그의 만년에 지은 집으로 봐요.
그래서인지 ★ 담도 대문도 없어요. 마을 쪽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앞마당 한쪽에 장독 수백 개가 줄지어 앉아 있고요. 벼슬은 마다하고 문은 열어 둔 사람의 집이에요.
가까이에 파평 윤씨 집안이 자녀를 가르치던 종학당(1643)이 있어요. 단양 강가에서 시를 쓴 군수로 시작해, 문 없는 집에서 끝나는 코스입니다.

명재고택 사랑채 · 사진 한국관광공사
네 도시가 멀리 떨어져 있어 한 번에 잇기보다 세 갈래로 나누는 게 맞아요. 갈래 안에서는 시간 순서를 지킵니다.
| 시간대 | 동선 |
|---|---|
| 영남 길 1일차 단양 | 도담삼봉 → 구담봉·옥순봉 유람선 → 안동으로 이동 |
| 영남 길 2일차 안동 | 도산서원(시사단) → 하회마을 → 병산서원(만대루에서 마무리) |
| 경기 길 반나절 파주 | 화석정 → 임진강 전망 → 파주 글의 나머지 명소 |
| 호서 길 하루 논산 | 돈암서원 → 개태사(같은 연산면) → 명재고택 · 종학당 |
| 항목 | 내용 |
|---|---|
| 왜 이 순서인가 | 이황이 단양에서 시를 쓴 뒤 안동에 서당을 지었고, 그다음 세대가 병산·돈암 서원을 세웠어요. 순서를 바꾸면 '누가 먼저였는지'가 사라집니다 |
| 서원은 셋만 | 도산·병산·돈암 세 곳이 2019년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아홉 곳에 든 서원이에요. 나머지 여섯은 다른 지역에 있습니다 |
| 산불 뒤 안동 | 2025년 봄 산불에 도산서원·병산서원·하회마을은 무사했어요. 다만 지역 상황은 바뀔 수 있으니 안동 글의 확인일을 보세요 |
| 유람선 | 구담봉·옥순봉은 물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고, 단풍철엔 예매가 필요합니다 |
| 요금·운영시간 | 각 도시 글의 '정보 확인일' 상자에 있어요. 이 글은 이야기 순서만 잡습니다 |
Q.이황과 율곡이 이 코스에서 만나나요?
이 글은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이황의 자리(단양·도산)와 율곡의 자리(화석정)를 시간 순서로 잇기만 합니다.
Q.선조가 화석정을 태운 건 사실인가요?
전해 오는 이야기예요. 피난길에 정자를 태워 강을 밝혔다는 전설이고, 확인된 기록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정자가 1673년과 1966년에 다시 세워진 건 사실이에요.
Q.서원이 다 비슷하지 않나요?
세 곳이 다 달라요. 도산은 서당과 서원이 두 겹, 병산은 강을 향한 만대루, 돈암은 높은 누마루 강당이 각각의 얼굴입니다.
Q.명재고택은 왜 담이 없나요?
벼슬을 마다한 윤증의 집이라 그렇게 지었다고들 보지만, 정확한 이유가 기록된 건 아니에요. 지금은 마을 쪽으로 열린 채 장독대와 사랑채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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