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부여 익산 여행 코스 (2026) — 백제는 두 번 이사하고 두 번 끝났습니다

백제 이야기를 지도 위에 올려 보면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나라는 하나인데 도읍이 셋이거든요. 처음엔 한강가 한성, 475년에 쫓기듯 내려온 웅진, 538년에 다시 옮긴 사비. 그리고 660년에 끝이 났죠. 그 웅진이 지금의 공주, 사비가 부여예요. 익산에는 마지막 왕들이 절과 무덤을 남겼고, 논산 벌판에서 백제가 마지막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주에서 출발해 부여, 익산을 거쳐 논산에서 끝내면 백제의 뒷부분 185년을 순서대로 걷는 셈이에요. 이 글은 그 순서대로 갑니다. 각 도시의 명소와 맛집은 따로 정리해 뒀으니, 여기서는 왜 이 순서로 가야 재미있는지만 들려드릴게요.
직접 다녀와서 쓴 글은 아니에요. 공주·부여·익산·논산 글을 쓰면서 국가유산청과 박물관 자료로 대조한 사실을 시대 순서로 다시 엮었습니다. 지어낸 장면은 없고, 확실하지 않은 건 그렇다고 적었어요.
먼저 요약하면
- 순서는 공주(웅진 475~538) → 부여(사비 538~660) → 익산(무왕) → 논산(660 · 936)
- 명소 8곳, 도시마다 두 곳씩 — 한 곳은 왕이 살던 자리, 한 곳은 기록이 나온 자리
- 무령왕릉(1971)·금동대향로(1993)·미륵사 금판(2009)·쌍릉 뼈(2018) — 우연이 바꾼 이야기 넷
- 2박 3일이 맞고, 하루씩 떼어 가도 순서만 지키면 됩니다
📌 정보 확인일 2026-09-15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한국관광공사 자료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이 글에서 소개하는 곳
일단 한눈에 보고 가시죠
| 장소 | 위치 | 이런 분께 |
|---|---|---|
| 🏯 공산성 | 공주 금성동 | 웅진 도읍 475~538 |
| 👑 무령왕릉과 왕릉원 | 공주 웅진동 | 1971년 우연히 열린 왕릉 |
| 🗼 정림사지 오층석탑 | 부여 동남리 | 사비 도읍 538~660 |
| 🏛️ 국립부여박물관 | 부여 동남리 | 1993년 진흙 속에서 나온 향로 |
| 🪷 미륵사지 | 익산 금마면 | 설화가 말한 것, 땅이 내놓은 것 |
| ⚱️ 익산 쌍릉 | 익산 석왕동 | 101년 만에 열린 나무상자 |
| ⚔️ 계백장군 유적지 | 논산 부적면 | 660년 7월 황산벌 |
| 🍲 개태사 | 논산 연산면 | 936년, 백제가 두 번째로 끝난 곳 |
1🏯 공산성 — 쫓겨 내려온 왕이 강가에 성을 쌓았습니다

공산성 성벽과 문루 — 왼쪽 표지석에 '백제역사유적지구' 가 새겨져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로 280 (금성동)
운영- 하절기(3월~10월) 9:00~18:00 · 동절기(11월~2월) 9:00~17:00 ※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마감
쉬는 날1월 1일 / 설·추석 당일
주차가능
475년 가을, 한성이 무너졌어요. 왕은 죽고, 남은 사람들은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금강이 크게 휘돌아 나가는 강가 언덕, 사람들이 곰나루라 부르던 자리에 멈춰 섰죠. 그게 웅진, 지금의 공주예요. 백제는 여기서 63년을 버팁니다.
그 63년의 왕성이 공산성이에요. 해발 110m 능선을 따라 성벽을 둘렀고, 쌍수정 앞 광장이 왕궁 자리로 추정돼요. 재미있는 건 이 성의 이름이 시대마다 바뀌었다는 거예요. 백제 땐 웅진성, 고려 땐 공주산성, 조선에 와서는 【쌍수산성】이 됐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여기로 피해 와서 반란이 진압됐다는 소식을 기다렸거든요.
성벽을 다 이으면 2,660m예요. 한 바퀴 도는 동안 금강과 공주 시내가 번갈아 내려다보이는데, 그 강이 바로 1,500년 전 백제가 등을 기댄 방어선입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어요.

밤 조명이 켜진 공산성의 누각 · 사진 한국관광공사
2👑 무령왕릉과 왕릉원 — 삽 끝에 벽돌이 걸렸습니다

봉분 아래 돌 입구 — 지금은 안내판으로 막혀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37 (웅진동)
운영[하절기(3월~10월)] · - 09:00~18:00 · - 입장마감 17:30 · [동절기(11월~2월)] · - 09:00~17:00 · - 입장마감 16:30
쉬는 날1월 1일 / 설· 추석 당일
주차가능
1971년 7월, 장마철의 송산리. 옆 무덤(5·6호분)으로 스며드는 물을 빼려고 배수로를 파던 중이었어요. 삽 끝에 뭔가 걸립니다. 흙이 아니라 벽돌이에요. 그것도 가지런히 쌓인 벽돌.
천오백 년 동안 아무도 열지 않은 문이 거기 있었습니다.
입구는 벽돌과 백회로 빈틈없이 막혀 있었고, 도굴꾼의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상태였어요. 안쪽에 돌판 두 장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이에요.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주인을 확실히 아는 무덤은 이곳뿐이에요. 그 확실함이 물길 하나를 내려다 우연히 왔습니다.
지금은 보존 때문에 무덤 안을 닫아 두고 옆 전시관에 모형을 만들어 뒀어요. 유물 실물은 가까운 국립공주박물관에 있습니다. 순서를 지키고 싶다면 공산성에서 왕이 살던 자리를 보고, 여기서 그 왕이 묻힌 자리를 보는 게 맞아요.

봉분처럼 흙을 덮은 고분군 전시관 입구 · 사진 한국관광공사
3🗼 정림사지 오층석탑 — 이긴 자가 탑에 글을 새겼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뒤편 강당 — 절은 사라지고 탑이 남았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운영[정림사지 5층석탑] 상시 개방 [정림사지 박물관] 하절기(3~10월) 09:00~18:00 · 동절기(11~2월) 09:00~17:00
쉬는 날[정림사지 5층석탑] 연중무휴 [정림사지 박물관]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주차가능요금(무료)
538년, 백제는 다시 짐을 쌉니다. 이번엔 쫓기지 않았어요. 스스로 고른 자리였죠. 부여, 그때 이름으로 사비. 여기서 122년을 더 이어 갑니다.
그리고 660년 여름, 끝이 와요.
그해 8월, 사비성은 이미 무너진 뒤였어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정림사 마당의 오층석탑 앞에 섭니다. 그리고 탑 몸통에 글을 새기게 해요. 자기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승전문이었죠. ★ 이긴 자의 글씨는 그 뒤 천삼백 년을 탑에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 가면 그 글자 앞에 설 수 있어요. 절은 사라지고 탑만 남은 마당에서요.
낙화암에서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요? 그 표현은 1484년 김흔이란 사람이 쓴 시에서 나왔어요. 백제 사람이 남긴 기록엔 없습니다. 부여는 이렇게 '누가 쓴 기록인가'를 자꾸 되묻게 하는 도시입니다. 다음 명소에서 그 반대편 기록을 보여 드릴게요.

밤 조명을 받은 오층석탑 · 사진 한국관광공사
4🏛️ 국립부여박물관 — 진 쪽의 기록은 진흙이 지켰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 금동대향로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1993년, 능산리 왕릉원 옆 절터. 주차장을 만들기 전 마지막 조사를 하던 날이었어요. 옛 공방터의 물구덩이, 진흙 속에서 뭔가가 나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 뚜껑 꼭대기에 봉황이 서 있고, 겹겹의 산봉우리 사이로 신선과 짐승, 악기를 든 악사 다섯이 새겨져 있어요. 받침은 용입니다. 백제가 스스로를 어떻게 그렸는지가 그 한 점에 다 들어 있었죠.
2년 뒤엔 같은 절터에서 '창왕 13년'이라고 새긴 사리감까지 나왔어요. 소정방이 탑에 승전문을 새기던 그해에 누군가 이걸 진흙 속에 숨겼는지, 아니면 그냥 묻혔는지는 아직 몰라요. 분명한 건 하나예요. 이긴 쪽은 돌에 새겼고, 진 쪽은 진흙이 지켜 줬습니다.
박물관은 2025년 12월 이 향로 한 점만을 위한 전시관 '백제대향로관'을 열었어요. 국보 한 점에 전시관 하나는 드문 일이에요. 정림사지 탑의 글자를 보고 여기 향로 앞에 서면, 같은 660년의 두 얼굴을 한 시간 안에 보는 셈이에요.

국립부여박물관 정문 · 사진 한국관광공사
5🪷 미륵사지 — 금판 하나가 여주인공을 바꿨습니다

20년 수리를 마치고 다시 선 미륵사지 서탑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이래요. 마를 캐던 청년 서동이 신라 공주 선화를 얻고, 왕이 된 뒤 공주와 함께 미륵사를 세웠다고요. 로맨스로 치면 여기가 절정이죠. 그리고 절터를 파 보니 정말 설화대로 탑과 금당이 세 곳에 나란히 있었어요. 여기까진 설화가 맞았습니다.
2009년, 서탑을 해체하던 중이었어요. 탑 속에서 금판이 나옵니다. 사리봉영기. 거기 적힌 발원자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 날짜는 639년 정월 29일. 백제 귀족의 딸이었어요. 선화공주라는 이름은 금판 어디에도 없었죠. 설화의 짜임은 맞고, 주인공이 흔들린 거예요.
그 서탑은 20년 수리를 마치고 다시 섰어요. 만든 해가 확실한 석탑 가운데 가장 이른 탑이에요. 탑 앞에 서면 두 여주인공 중 누구를 믿을지 고르게 됩니다. 저는 아직 못 골랐어요.

미륵산 아래 나란히 선 동탑(오른쪽)과 서탑 · 사진 한국관광공사
6⚱️ 익산 쌍릉 — 왕은 찾았는데 옆자리 주인은 아직 모릅니다

솔숲 속에 앉은 쌍릉의 봉분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쌍능길 65 (석왕동)
주차가능
북쪽의 큰 무덤과 180m 떨어진 남쪽의 작은 무덤. 오래전부터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전해 왔어요. 1917년, 일본인 조사자가 이미 도굴된 무덤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뼈를 나무상자에 담아 돌방 안에 두고 갔어요.
2018년, 다시 발굴하던 사람들이 그 상자를 찾았습니다. 101년 만이에요. 분석해 보니 50대 이상, 60~70대로 보는 노년 남성이었고 키는 당시로선 큰 편. 죽은 때는 620~659년 사이. 641년에 세상을 떠난 무왕과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럼 옆 소왕릉은요? 아직 몰라요. 설화 속 선화공주인지, 금판의 사택 왕후인지. 미륵사에서 못 고른 질문이 여기서 한 번 더 남습니다. 땅이 아직 답을 안 줬어요.
7⚔️ 계백장군 유적지 — 승전문보다 한 달 앞선 벌판

계백장군 유적지의 솔숲 언덕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
시간을 한 달만 되감을게요. 660년 7월, 부여 탑에 글자가 새겨지기 전이에요. 황산벌에 백제군이 섭니다. 이끄는 사람은 계백. 신라군이 훨씬 많았고,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예요. 계백은 여기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결전이었죠. 멸망 자체는 뒤이은 사비 함락이고요.
이 언덕의 공식 이름은 '계백장군유적전승지'예요. 1966년에 발견됐고 지명이 근거예요. 확실한 무덤이라고 말하지 않는 대신 '전하는 자리'라고 부르는 거죠. 옆의 백제군사박물관 복도 끝에 기마 장수의 빛 그림이 비칩니다.
여기까지 오면 순서가 완성돼요. 공주에서 시작한 왕조가 부여에서 끝났고, 그 끝을 한 달 앞당겨 결정한 벌판이 여기예요. 그런데 논산에는 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백제군사박물관 복도 끝에 비친 기마 장수의 빛 그림 · 사진 한국관광공사
8🍲 개태사 — 276년 뒤 같은 황산에서

개태사 철확 — 된장을 끓이던 솥으로 전하는 거대한 쇠솥 · 사진 한국관광공사
주소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연산면)
운영상시 개방
쉬는 날연중무휴
주차가능(소형 20대 / 대형 5대)
936년. 백제가 망한 지 276년이 지났어요. 백제를 다시 세우겠다며 나라 이름까지 후백제로 지은 견훤이 있었죠. 그런데 그 나라도 같은 황산에서 끝납니다. 아들 신검이 여기서 왕건에게 항복했고, ★ 견훤은 며칠 뒤 황산의 절에서 등창으로 죽었다고 전해요.
아버지가 세운 나라를 아들이 넘긴 자리예요.
왕건은 이긴 자리의 이름을 바꿉니다. 황산을 천호산으로. 그리고 절을 세워요. 그게 개태사예요(936~940). 법당 안에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서 있고, 마당에는 거대한 쇠솥 철확이 있어요. 『여지도서』는 이 솥을 개태사 전성기에 된장을 끓이던 솥이라고 적었어요. 1887년 대홍수 때 약 2km를 떠내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안내판이 옆에 있습니다.
660년의 황산벌과 936년의 황산이 정확히 같은 벌판인지는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같은 황산, 연산 일대'까지만 말할게요. 두 번 끝난 자리에 세워진 절에서 이 코스를 마칩니다.

법당 안에 선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 사진 한국관광공사
그래서, 하루 코스로 묶으면
왕조가 걸어간 순서대로 도시를 잇습니다. 도시 안 동선과 맛집은 각 도시 글에 있어요.
| 시간대 | 동선 |
|---|---|
| 1일차 공주 | 공산성(왕이 살던 성) → 무령왕릉과 왕릉원(그 왕의 무덤) → 국립공주박물관 |
| 2일차 부여 | 정림사지 오층석탑(승전문) → 국립부여박물관(금동대향로) → 궁남지(서동이 태어났다는 못) |
| 3일차 익산 | 미륵사지(금판) → 쌍릉(나무상자) |
| 3일차 오후 논산 | 계백장군 유적지(660년 7월) → 개태사(936년) |
이건 알고 가세요
| 항목 | 내용 |
|---|---|
| 순서를 바꾸면 | 이야기가 끊겨요. 부여를 먼저 가면 '왜 도읍을 옮겼는지'가 빠지고, 논산을 먼저 가면 '무엇의 끝인지'가 빠집니다 |
| 하루만 낼 수 있으면 | 공주 + 부여. 왕이 살던 성과 이긴 자의 글자, 진 쪽의 향로까지 하루에 봅니다 |
| 아이와 간다면 | 무령왕릉 전시관(모형)과 백제군사박물관이 실내예요. 미륵사지는 넓은 마당이라 뛰어놀기 좋습니다 |
| 세계유산 | 공산성·무령왕릉·정림사지·부여 왕릉원·미륵사지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함께 올랐어요 |
| 요금·운영시간 | 각 도시 글의 '정보 확인일' 상자에 있어요. 이 글은 이야기 순서만 잡습니다 |
이런 거 궁금하시죠
Q.백제는 왜 도읍을 두 번 옮겼나요?
475년엔 한성이 무너져 쫓기듯 웅진(공주)으로 내려왔고, 538년엔 스스로 골라 사비(부여)로 옮겼어요. 공산성에 오르면 첫 번째 이유가 보이고, 부여 궁남지에 서면 두 번째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Q.선화공주는 실제 인물인가요?
『삼국유사』에는 나오지만, 2009년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판은 절을 세운 왕후를 '사택적덕의 딸'로 적었어요. 설화의 짜임은 맞고 주인공이 흔들린 상태예요. 쌍릉 소왕릉의 주인도 아직 모릅니다.
Q.황산벌이 정확히 어디예요?
논산 연산 일대로 봅니다. 660년 계백의 황산벌과 936년 후백제가 항복한 황산이 같은 벌판이라는 근거는 없어서, 이 글은 '같은 황산'까지만 말해요.
Q.여기 나온 명소만 보면 되나요?
이 글은 시대 순서로 고른 8곳이에요. 각 도시의 나머지 명소와 맛집은 아래 '같이 읽을 글'에 도시별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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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노트
- 이 글의 사실은 전부 공주·부여·익산·논산 글에서 대조한 것이다(국가유산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우리역사넷·국립부여박물관·국립익산박물관·각 시군 문화대전). 새로 조사한 사실은 없다.
- 무령왕릉 출토 유물 수는 자료마다 달라(2,906점 / 5,235점) 쓰지 않았다. 금동대향로의 높이·무게도 자료마다 달라 뺐다.
- 견훤이 죽은 '황산의 절'이 개태사인지는 자료가 갈려 '황산의 절'로만 적었다. 660년 황산벌과 936년 황산이 같은 지점이라는 근거는 없다.
- 쌍릉 대왕릉 뼈의 나이는 '50대 이상, 60~70대로 보는 노년 남성'이 공식 표현이다. 소왕릉의 주인은 확인된 바 없다.
- 직접 다녀와서 쓴 글이 아니다. 요금·운영시간은 각 도시 글의 정보 확인일 상자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