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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2026) — 전국에서 모인 승려들이 2년 만에 쌓은 성입니다

근교 나들이

by 나들이지기 2026. 9. 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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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거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성】이 통째로 남아 있어요.

여기까지는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성을 누가 쌓았는지 물어보면 대개 답을 못 하세요. ★ 전국에서 모인 승려들이 쌓았습니다. 나라가 팔도의 스님을 불러 모아 2년 만에 12.4km를 올렸어요.

그렇게 쌓은 성은 지은 목적 그대로 쓰였습니다. 1636년 겨울, 임금이 들어와 ★ 47일을 버텼어요. 그리고 271년 뒤 같은 성에서, 그 스님들이 살던 절이 하루아침에 폭파됩니다.

이 글은 그 순서대로 갑니다. 누가 쌓았고, 어떻게 쌓았고,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끝났는지요. 걷는 정보는 뒤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수어장대. 다섯 개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건물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먼저 요약하면

  • ★ 인조 2년(1624)부터 2년 동안, 전국 팔도의 승군이 쌓았습니다. 총융사 이서가 지휘하고 각성 스님이 승군을 이끌었어요. 길이는 12.4km입니다.
  • ★ 거중기는 여기가 아닙니다. 정약용의 기계는 170년 뒤 수원 화성 이야기예요. 이 성은 장대석 받침 위에 돌을 바른층으로 올려 손으로 쌓았습니다.
  • 1907년 8월 1일, 군대 해산과 같은 날 성 안 절들의 화약이 폭파되면서 망월사와 개원사가 불탔습니다. 지금 '터' 팻말로 남아 있어요.
  • 걷기는 가장 짧은 2코스가 3km · 1시간, 수어장대를 지나는 1코스가 3.8km · 1시간 20분입니다. 【성 안을 걷는 것은 무료】예요.

📌 정보 확인일 2026-09-20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자료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기본 정보부터

항목 내용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성곽 길이 총 12.4km (본성 8.9km · 외성 3.2km · 신남산성 0.2km), 높이 7.3m
문 동서남북 4대문과 문루, 암문 16개
지은 때 광해군 때(1621) 손대기 시작 → 인조 2년(1624)부터 2년 동안 지금 모습으로
쌓은 사람 총융사 이서가 지휘, 도총섭 각성이 이끈 전국 팔도의 승군
세계유산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거리 서울에서 동남쪽 24km, 성남에서 북동쪽 6km
문의 031-8008-5155

12천 년 동안 고쳐 쌓은 자리입니다

성벽을 따라 길이 나 있습니다. 한쪽은 여장, 한쪽은 소나무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자리가 성이 된 건 조선이 처음이 아닙니다. 기록을 보면 백제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어요.

그 옛 터를 후대가 계속 고쳐 썼습니다. 광해군 때(1621)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 쌓아 올린 건 그 뒤 인조 2년(1624)부터예요. 그 공사 이야기를 다음 절에서 하겠습니다.

쌓은 방식도 눈에 보입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썼는데 큰 돌을 아래에, 작은 돌을 위에 올렸어요. 성벽 가까이 가서 보시면 아래위 돌 크기가 다른 게 그대로 보입니다.

한양을 지키던 네 요새 중 하나였습니다. 북쪽이 개성, 남쪽이 수원, 서쪽이 강화, 그리고 【동쪽이 이 광주】였어요.

2이 성은 스님들이 쌓았습니다

성 앞에서 제가 제일 먼저 말씀드리는 게 이겁니다. ★ 남한산성을 쌓은 건 군인이 아닙니다. 승려들이에요.

사정이 급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도성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고, 인조가 즉위하자마자 【이괄의 난】이 터졌어요. 북쪽에서는 후금이 커지고 있었고요. 임금이 몸을 피할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인조 2년(1624), 임금은 총융사 이서에게 산성을 쌓으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없었어요. 전쟁을 막 겪은 나라에 성 하나를 올릴 인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부른 게 승려였습니다. ★ 벽암 각성 스님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앉히고 전국 여덟 개 도의 승군을 불러 모았어요. 도총섭은 전국 승군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스님이 국가 공사의 총책임자가 된 겁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끝냈습니다. 인조 4년(1626)에 성이 섰어요. 12.4km를, 2년 만에요.

3기계는 없었습니다 — 거중기는 170년 뒤 이야기예요

여기서 많이들 헷갈리시는 게 있습니다. ★ 정약용의 거중기와 녹로는 남한산성이 아니라 수원 화성입니다.

화성은 ★ 1794년에 시작해 1796년에 끝났어요. 정약용이 동서양 기술서를 참고해 쓴 '성화주략' 을 지침 삼아, 거중기·녹로 같은 기구 열 종류를 새로 만들어 큰 돌을 들어 올렸습니다.

남한산성은 그보다 170년 앞선 1624년입니다. 도르래로 돌을 들어 올리는 기계 같은 건 없었어요. 사람 손과 등으로 올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쌓았느냐. 방식은 단순하고 정확합니다. ★ 바닥을 다지고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받침돌로 깐 다음, 그 위에 성돌을 '바른층쌓기' 로 올렸어요. 돌의 높이를 층마다 맞춰 가로줄이 곧게 나오도록 쌓는 방식입니다.

성벽 앞에 서서 한번 보세요. ★ 아래쪽 돌은 크고 위쪽 돌은 작습니다. 무거운 걸 아래에 두어 무게를 버티게 한 거예요. 기계가 없으니 돌을 고르는 눈과 쌓는 순서로 해결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화성보다 이쪽이 더 놀랍다고 말씀드려요. 화성은 기술로 지은 성이고, 남한산성은 사람으로 지은 성입니다.

4성보다는 도시에 가까웠습니다

성 안에는 군사를 맡은 수어청이 있었고 관아와 창고, 행궁이 들어섰습니다. 광주읍의 ★ 행정처까지 산성 안으로 옮겼어요.

행궁은 임금이 유사시에 거처할 곳으로 지었습니다. 상궐 73칸, 하궐 154칸, 좌전 26칸으로 모두 252칸이었어요.

물도 준비했습니다. 우물 80개, 샘 45개를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와 살 계산이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실제로 성을 쌓고 처음 시행한 기동 훈련(인조 17년, 1639)에 참가 인원만 12,700명이었습니다.

5성 안에 절이 아홉 개 있었습니다

성을 쌓은 승군이 공사가 끝났다고 돌아간 게 아닙니다. ★ 그대로 눌러앉아 성을 지켰어요.

그러려면 살 곳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사 중에 ★ 성 안에 절을 새로 지었어요. 장경사·망월사·개원사·옥정사·남단사·한흥사·천주사·동림사 같은 절들입니다.

이 절들은 예불만 드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 팔도 승군이 머무는 막사였고, 군기와 화약을 쌓아 두는 창고였어요. 절이 곧 병영이던 셈입니다.

개원사에는 인조 15년(1637)부터 【대장경】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경전과 화약이 같은 성 안에 있었던 셈이에요.

이 대목을 기억해 두세요. ★ 뒤에 나올 1907년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6성을 어떻게 썼는지는 숫자가 말해 줍니다

완성된 성의 명세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 옹성 3개, 성랑 115개, 문 4곳, 암문 16곳, 우물 80곳, 샘 45곳이에요.

하나씩 뜻을 붙여 보면 성이 어떻게 굴러갔는지가 보입니다.

【여장】은 성벽 위에 낮게 세운 담입니다. 몸을 숨기고 총을 쏘는 자리예요. 1,897개면 그만큼 사람이 붙어 설 수 있었다는 말이에요.

【옹성】은 성문 바깥에 항아리처럼 한 겹 더 두른 벽입니다. 적이 문으로 달려들면 이 안에 갇혀 삼면에서 공격을 받아요.

【성랑】은 성벽을 따라 세운 초소입니다. 115개를 촘촘히 두어 성벽 전체를 눈으로 잇게 했어요.

【암문】은 문루도 간판도 없는 숨은 문입니다. 밖에서는 벽처럼 보여요. 몰래 드나들며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통로였습니다. 열여섯 개나 됩니다.

그리고 ★ 우물 80개와 샘 45개. 이게 이 성의 진짜 무기였습니다. 산성은 포위당하면 물로 무너지는데, 여기는 물이 있었어요.

7그 47일은 행궁에서였습니다

행궁은 인조 4년(1626)에 세웠습니다. 전쟁이나 내란이 나면 지원군이 올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지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10년 뒤 ★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터집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해 47일간 항전했습니다. 지어 둔 목적 그대로 쓰인 셈이에요.

그 뒤로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와 이천 쪽 능행길에 여기 머물렀습니다.

행궁은 ★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됐고,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해 2002년에 내행전을, 2004년에 좌전을 다시 세웠어요.

8수어장대 — 다섯 중 하나만 남았습니다

수어장대 정면. 아래층과 위층의 칸 수가 다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성 안에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장대가 다섯 개 있었습니다. 동장대·서장대·남장대·북장대·외동장대인데, 지금 남은 건 수어장대 하나뿐이에요.

청량산 정상, 해발 482m에 있습니다. 성 안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합니다.

처음부터 2층은 아니었습니다. ★ 영조 27년(1751)에 2층 누각으로 올렸어요.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위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입니다. 사진에서 아래위 지붕 폭이 다른 게 그 때문이에요.

이때 편액도 걸었습니다. 바깥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 입니다. 잊지 말라는 뜻이에요. 무엇을 잊지 말라는 것인지는 47일을 생각하면 짐작이 갑니다.

91907년 8월 1일, 성 안의 절들이 한꺼번에 폭파됐습니다

이 성의 이야기는 병자호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아픈 대목이 20세기 초에 있어요.

개항 뒤 일본의 침략이 심해지자 남한산성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됩니다. 1896년 2월 23일 경기의병이 이 성에 집결했고, 28일에는 이천의병과 합세해 성을 점거했어요. 성은 여전히 성으로 쓰이고 있었던 겁니다. 다만 그 의병은 내부의 고발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 1907년 8월 1일.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바로 그날입니다. 같은 날 일본군은 남한산성의 각 사찰에 보관돼 있던 무기와 탄약을 서둘러 없애려고 폭파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 절들이에요. ★ 승군이 쌓고, 승군이 살고, 승군이 화약을 지키던 절. 그 화약 때문에 절이 터졌습니다. 망월사가 그날 소실됐고, 개원사는 법당과 누각이 부속 건물과 함께 탔습니다. 270년 동안 보관돼 온 대장경도 그때 함께 사라졌어요.

성 안을 걷다 보면 '개원사지', '망월사지' 같은 팻말이 보이실 겁니다. '지(址)' 가 터를 가리킵니다. 건물은 없고 자리만 남았다는 말이에요.

쇠락은 이어졌습니다. 1917년에 성 안에 있던 광주군청이 산성 밖으로 옮겨 가면서 도시로서의 기능도 끝납니다.

그래도 사람은 남았어요. ★ 1919년 3월 27일 새벽, 주민들이 남한산성에 횃불을 올리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300여 명이 참가했어요. 1930년에는 석혜환·정영배 등이 남한산노동공조회를 만들었고, 1934년 12월 광주공산당협의회로 이어지다 1936년 1월에 적발돼 무너집니다.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됐습니다. 스님들이 쌓고, 임금이 버티고, 의병이 점거하고, 절이 폭파되고, 주민이 횃불을 든 자리가 통째로요.

10코스는 다섯 개, 짧은 건 1시간입니다

탐방로 안내 기둥. '1코스 장수의 길', '5코스 산성의 길'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성벽을 도는 길이 다섯 갈래로 정리돼 있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이라면 1코스나 2코스면 충분해요.

1코스 산성로터리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천주사터 → 남문 → 산성로터리. ★ 약 3.8km, 1시간 20분. 수어장대가 들어 있어서 처음 오는 사람에게 가장 무난합니다.

2코스 산성로터리 → 영월정 → 수어장대 → 서문 → 국청사 → 숭렬전 → 산성로터리. ★ 약 3km, 1시간. 가장 짧습니다.

3코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 → 벌봉 → 장경사 → 망월사 → 동문 → 센터. ★ 약 5.7km, 2시간.

4코스 산성로터리 → 남문 → 남장대터 → 동문 → 지수당 → 개원사 → 산성로터리. ★ 약 3.8km, 1시간 20분.

5코스 센터 → 동문 → 동장대터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동문 → 센터. ★ 약 7.7km, 3시간 20분. 성을 거의 한 바퀴 두르는 길입니다.

11성벽 위에서 도시가 보입니다

성벽 너머로 도시가 내려다보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성의 재미는 안쪽과 바깥쪽이 전혀 다른 풍경이라는 데 있습니다. 성 안쪽은 소나무와 기와집인데, ★ 여장 너머로 고개를 돌리면 아파트 단지와 도시가 깔려 있어요.

해발 482m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시야가 트이는 구간이 계속 나옵니다. 걷다가 한 번씩 서서 바깥을 보시면 400년 전 이 자리에서 무엇을 살폈을지가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길 자체는 대체로 평탄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다만 성벽 위를 걷는 게 아니고 【성벽을 따라 난 흙길】이라 비 온 다음 날에는 미끄러운 구간이 있어요.

12성 안을 걷는 건 무료, 행궁만 표를 삽니다

성벽길 아래로 기와지붕이 보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많이들 헷갈리시는데, ★ 산성을 걷는 데는 입장료가 없습니다. 돈이 드는 건 행궁 관람과 주차예요.

행궁 관람료는 어른(만19~64세) 2,000원, 청소년(만7~18세) 1,000원입니다. 30인 이상 단체는 각각 1,600원과 800원이에요.

무료 대상이 꽤 넓습니다. 만6세 이하와 만65세 이상, 경기도민, 한복을 입은 사람, 장애인과 보호자 1인, 국가유공자, 군인 등입니다. 경기도에 사신다면 신분증만 있으면 됩니다.

관람시간은 4~10월 10:00~18:00, 11~3월 10:00~17:00입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인데 공휴일이면 엽니다. 매표는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예요.

주차비는 평일과 공휴일이 다릅니다

1000cc 이상 승용차와 소형승합차는 평일 3,000원, 공휴일 5,000원입니다. 1000cc 미만은 평일 1,500원, 공휴일 2,500원이고, 중·대형차는 평일 6,000원에 ★ 공휴일은 아예 주차가 안 됩니다. 대신 30분 안에 나오면 무료이고 20:00~09:00도 무료예요. 다자녀는 3명 이상 무료, 2명 이상 50% 감면입니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항목 내용
누가 쌓았나 총융사 이서가 지휘, 도총섭 각성이 이끈 전국 팔도의 승군. 인조 2년(1624)~4년(1626)
거중기는 아님 정약용의 거중기·녹로는 수원 화성(1794~1796). 남한산성은 그보다 170년 앞선다
꼭 찾아볼 것 '개원사지'·'망월사지' 팻말 — 1907년 8월 1일 폭파로 건물이 사라진 자리다
입장료 산성을 걷는 것은 무료. 행궁만 어른 2,000원 · 청소년 1,000원
행궁 관람시간 4~10월 10:00~18:00 · 11~3월 10:00~17:00 (매표는 종료 30분 전까지)
휴관 행궁은 매주 월요일. 단 공휴일이면 문을 엽니다
주차 1000cc 이상 평일 3,000원 · 공휴일 5,000원. 30분 이내 출차와 20:00~09:00은 무료
가장 짧은 코스 2코스 약 3km · 1시간 (산성로터리에서 시작)
가을 행사 '숲속의 산성도시 — 남한산성 가을 페스타' 가 10월 25일까지 남한산성 일원에서 열립니다. 참가비 무료, 문의 1800-4746
신발 성벽을 따라 난 흙길 구간이 있습니다. 비 온 다음 날은 미끄러워요

자주 묻는 것

Q.남한산성은 누가 쌓았나요?

인조 2년(1624)에 총융사 이서가 공사를 지휘했고, 실제로 쌓은 사람은 전국 여덟 개 도에서 모인 승군입니다. 벽암 각성 스님이 팔도도총섭을 맡아 승군을 이끌었어요. 2년 만인 1626년에 완성했습니다.

Q.거중기로 쌓았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수원 화성입니다. 정약용의 거중기와 녹로는 1794~1796년 화성 공사에서 쓰였어요. 남한산성은 그보다 170년 앞선 1624년 공사라 그런 기구가 없었습니다. 장대석을 받침으로 깔고 성돌을 바른층쌓기로 올렸어요.

Q.성 안에 왜 절이 많았나요?

성을 쌓은 승군이 공사 뒤에도 남아 성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장경사·망월사·개원사 같은 절이 승군의 막사였고, 군기와 화약을 쌓아 두는 창고이기도 했어요. 그 화약 때문에 1907년 8월 1일 일본군에게 폭파됐습니다.

Q.입장료를 내야 하나요?

산성을 걷는 데는 입장료가 없습니다. 행궁에 들어갈 때만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을 냅니다. 만65세 이상과 경기도민, 한복 착용자는 무료예요.

Q.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코스에 따라 다릅니다. 가장 짧은 2코스가 약 3km에 1시간, 수어장대가 들어간 1코스가 약 3.8km에 1시간 20분, 성을 거의 한 바퀴 두르는 5코스가 약 7.7km에 3시간 20분입니다.

Q.월요일에 가도 되나요?

산성 자체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다만 행궁이 매주 월요일 휴관이에요. 공휴일과 겹치면 행궁도 엽니다.

Q.수어장대는 어디에 있나요?

청량산 정상, 해발 482m 지점입니다. 1코스와 2코스 모두 수어장대를 지납니다.

Q.주차장은 넉넉한가요?

주차장이 있고 요금은 평일과 공휴일이 다릅니다(1000cc 이상 기준 3,000원과 5,000원). 30분 안에 나오면 무료입니다. 중·대형차는 공휴일에 주차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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