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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2026) — 성을 쌓은 사람 1,800명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근교 나들이

by 나들이지기 2026. 9.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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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는 일에 사람을 공짜로 부리지 않은 임금이 있었습니다. ★ 품삯을 주라고 못을 박았어요.

그래서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공사 보고서에 일한 사람 1,800여 명의 이름과 사는 곳, 며칠 일했고 얼마를 받았는지가 적혀 있어요. 그 가운데는 신분이 낮은 일꾼의 이름도 섞여 있습니다.

그 보고서가 【화성성역의궤】고, 그 성이 수원화성입니다. 1794년 1월에 시작해 1796년 9월에 끝났어요.

요금 이야기를 먼저 해 두겠습니다. ★ 성곽은 상시 개방이고 무료입니다. 돈을 내는 건 화성행궁이에요. ★ 어른 2,000원. 성벽만 걸으실 거라면 한 푼도 안 듭니다.

성벽 여장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입니다. 이 성은 지금도 도시 한복판에 있어요 · 사진 한국관광공사

먼저 요약하면

  • 【성곽은 무료 · 상시 개방】입니다. 화성행궁만 유료예요(어른 2,000원 · 09:00~18:00 · 연중무휴).
  • 둘레 5,744m, 한 바퀴 5.1km 성곽길이 【두 시간】쯤 걸립니다. 시설물이 49개예요.
  • 1794년 1월에 시작해 1796년 9월에 끝났습니다. 설계는 정약용이 맡았고, 일한 사람에게 ★ 품삯을 줬어요.
  • 6·25로 부서진 것을 1975~1979년에 복원했습니다. 의궤에 적힌 대로 되살린 점을 인정받아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어요.

📌 정보 확인일 2026-09-24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수원문화재단 수원화성관광 관람안내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기본 정보부터

항목 내용
주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화성행궁) · 성곽은 팔달구 일대를 두릅니다
쌓은 때 1794년(정조 18) 1월 ~ 1796년(정조 20) 9월
규모 둘레 5,744m · 면적 130ha · 시설물 49개(문루 4 · 수문 2 · 공심돈 3 · 장대 2 · 포루 10 · 각루 4 · 암문 5 …)
설계 정약용 — 정조가 내린 '어제성화주략' 에 따라 규모·방어시설·재료를 계획
지정 국가사적 ·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람 성곽 상시 개방(무료) · 화성행궁 09:00~18:00(입장 마감 1시간 전) · 연중무휴
관람료 화성행궁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문의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1아버지 묘를 옮기면서 생긴 도시입니다

밤에 불을 밝힌 화성행궁 봉수당 —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연 자리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시작은 성이 아니라 【무덤】이었어요. 1789년, 정조는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깁니다. 새 이름은 현륭원이었고요.

그런데 그 자리에 이미 ★ 수원 고을이 앉아 있었습니다. 정조는 고을을 통째로 팔달산 아래로 옮겼어요. 사람이 살던 마을을 옮긴 겁니다. 그렇게 옮긴 자리에 새로 지은 도시가 지금의 수원이고, 그 도시를 두른 것이 화성이에요.

1795년 윤2월,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이 길을 다시 옵니다. 【어머니의 회갑】이었어요. 잔치는 윤2월 13일 행궁 봉수당에서 열렸습니다. 왕실 여성이 궁궐 밖 먼 곳까지 나와 회갑상을 받은 건 이때가 유일했다고 해요.

사도세자와 혜경궁은 동갑이었습니다. ★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같은 해에 환갑이었어요. 아버지의 묘 앞을 지나 어머니의 잔칫상으로 가는 길이었던 셈입니다.

2설계는 정약용이 했고, 돌 대신 벽돌을 섞었습니다

장안문 문루. 아래를 보시면 돌이 아니라 검은 벽돌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정조는 성의 계획을 【정약용】에게 맡깁니다. 정약용은 조선과 중국의 축성법을 모아 성의 규모와 방어시설, 무슨 재료를 쓸지까지 계획서로 올렸어요.

눈에 띄는 선택이 【전돌】, 그러니까 구운 벽돌입니다. 조선 성곽은 돌로 쌓는 게 보통이었는데 화성은 돌과 벽돌을 섞었어요. 사진에서 장안문 문루 아래쪽을 보시면 검은 벽돌이 줄줄이 쌓여 있습니다. 벽돌은 모양을 맞춰 구울 수 있으니 둥근 벽이나 좁은 구멍같이 돌로는 어려운 모양을 만들 수 있어요.

공사 기구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정조가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을 정약용이 참고해 【거중기】를 고안했고, 돌을 나르는 수레 【유형거】와 높이 들어 올리는 【녹로】도 함께 썼어요. 거중기는 움직도르래 넷을 물려 힘을 8분의 1로 줄이는 장치입니다.

이 기구들의 그림이 의궤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어떤 부품이 몇 개 들어가는지까지 그려 놨어요. 수원화성박물관에 실물로 되살려 놓은 것이 있습니다.

3부역이 아니라 품삯을 줬습니다

돌로 쌓은 성벽과 검은 벽돌로 만든 시설이 한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성이 정말 특별한 건 생김새보다 【사람을 쓴 방식】이에요.

신하들은 돈이 없으니 백성을 부역으로 동원하거나 승려를 불러 쓰자고 했습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으니까요. 정조는 받아들이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라고 하교합니다.

액수가 기록에 남아 있어요. 돌 다루는 석수는 하루 4전 5푼에 쌀 6되, 기술이 없는 일꾼은 하루 2전 5푼이었습니다. 일한 만큼 받는 자리였다는 뜻이에요.

공사에 든 사람은 70만 명 남짓, 돈은 80만 냥이었다고 합니다. 나라 살림이 휘청일 만한 규모였어요. 실제로 이 무렵 중앙 재정의 재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4천팔백 명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팔달산 꼭대기 서장대. 현판에 '화성장대(華城將臺)' 라고 적혀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공사가 끝나고 나온 보고서가 【화성성역의궤】입니다. 1801년에 간행됐어요.

여기에 일한 사람 1,800여 명의 이름과 사는 곳, 일한 날수, 받은 임금이 적혀 있습니다. 공사를 주관한 관리는 물론 ★ 신분이 낮은 사람의 이름까지 빼놓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 기록에서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물건 쪽은 더 꼼꼼합니다. 벽돌 하나, 기와 하나를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고 크기가 얼마이며 모두 몇 개를 썼는지까지 글과 그림으로 남겼어요.

이 기록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마지막 꼭지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미리 한 줄만 적자면, ★ 이 성이 지금 세계유산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여기에만 있는 시설이 있습니다

위에서 본 동북공심돈. 벽돌로 쌓은 원통에 총 쏘는 구멍이 줄지어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성곽을 돌다 보면 둥근 벽돌 탑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공심돈】이라고 해요. 이름 그대로 【속이 빈 망루】인데, 우리나라 성곽 가운데 ★ 화성에만 있습니다.

안에 계단이 있어 층마다 올라가며 밖을 내다보고 총을 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사진을 보시면 벽면에 구멍이 줄지어 뚫려 있습니다. 벽돌을 쓴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모양이고요.

반대로 군사시설인데 전혀 그렇게 안 생긴 것도 있습니다. 화홍문 옆 벼랑에 앉은 【방화수류정】이 그래요. 공식 이름은 동북각루, 즉 망루인데 생김새는 연못가 정자입니다. 실제로 성 안팎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예요.

팔달산 꼭대기의 【서장대】는 지휘소입니다. 앞 사진 현판이 그거예요. 올라서면 성 전체와 수원 시가지가 통째로 보입니다. 거기서 보이는 만큼이 이 성이 지키던 범위였던 셈이죠.

6부서진 성이 어떻게 세계유산이 됐을까

서장대에서 이어지는 성벽과 그 아래 수원 시가지 ·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성은 온전히 남아 있지 못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헐렸고, ★ 6·25 때 크게 부서졌어요. 동쪽 창룡문은 아예 무너졌고요.

지금 우리가 보는 화성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되살린 것입니다. 남수문은 2012년에야 다시 세웠고요.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봐요. 현대에 새로 지은 것은 등재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화성에는 ★ 의궤가 있었습니다. 벽돌 하나까지 적어 둔 그 보고서대로 되살렸으니 '지어낸 복원' 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거예요. 그 점을 인정받아 1997년 12월에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이름을 적어 둔 기록이 이백 년 뒤에 성을 다시 세웠습니다. 【기록이 유산을 살린 셈】이에요.

▶ 유튜브 영상 · KBS 히스토리 「KBS 역사스페셜 – 수원 화성은 18세기 최첨단 전투요새였다」

성곽은 무료, 행궁은 유료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에요. 성벽과 성곽길, 문루와 공심돈은 돈을 내지 않고 상시 개방입니다. 밤에도 걸을 수 있어요. 입장권이 필요한 곳은 【화성행궁】이고 어른 2,000원입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과 65세 이상, 6세 이하는 무료예요.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항목 내용
어디서 시작하나 한 바퀴 5.1km에 두 시간쯤 걸립니다. 연무대(창룡문) 쪽에서 시작하시는 편이 편해요. 주차장이 있고 평지에서 출발합니다. 팔달산 서장대 쪽은 계단과 오르막이라 거기서 시작하면 초반에 힘이 빠집니다.
다 걷기 어렵다면 【화성어차】가 연무대에서 출발해 주요 시설과 성곽길을 돌아 제자리로 오는 순환 코스를 운행합니다. 한 바퀴 30분쯤이에요. 정조 시대 가마와 순종이 타던 어차를 본떠 만든 관광열차입니다.
밤에 가도 됩니다 성곽은 상시 개방이라 야간 산책이 됩니다. 이 글 두 번째 사진처럼 【행궁 야간개장】도 있어요(해마다 기간이 달라 가시기 전에 확인하세요). 조명을 켠 공심돈과 성벽이 낮과 꽤 다릅니다.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자리 【방화수류정과 용연】입니다. 연못 건너편에서 보면 벼랑 위 정자와 물에 비친 그림자가 함께 들어와요. 화홍문 물길도 바로 옆입니다.
밥은 행궁동에서 행궁 앞 【행궁동】은 골목마다 식당과 카페가 들어찬 동네예요. 성곽길 한 바퀴를 돌고 내려와 앉기 좋은 자리입니다.
요금 · 운영시간 행궁 관람료와 시간은 바뀔 수 있습니다. 위 상자에 확인한 날짜를 적어 뒀으니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세요. 문의는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이에요.

자주 묻는 것

Q.수원화성 입장료가 있나요?

★ 성곽은 무료입니다. 상시 개방이라 시간에 관계없이 걸을 수 있어요. 돈을 내는 곳은 【화성행궁】이고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65세 이상과 6세 이하는 무료예요.

Q.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려요?

성곽길이 5.1km에 두 시간쯤입니다. 성벽 둘레 자체는 5,744m예요. 중간에 팔달산 구간이 오르막이라 걷는 속도가 떨어집니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돌면 반나절을 잡으시는 게 편해요.

Q.어디서 출발하는 게 좋아요?

【연무대(창룡문)】 쪽을 권합니다. 주차장이 있고 평지에서 시작해요. 화성어차도 여기서 탑니다. 반대로 팔달산 쪽에서 시작하면 초반이 계단과 오르막입니다.

Q.거중기로 성벽을 쌓았나요?

흔한 오해예요. 거중기는 채석장에서 돌을 수레에 싣는 데 주로 쓰였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움직도르래 넷으로 힘을 8분의 1로 줄이는 장치예요. 성벽 위로 돌을 올린 것은 【녹로】와 사람의 손이었습니다.

Q.6·25 때 부서졌는데 왜 세계유산인가요?

복원의 근거가 남아 있어서예요. 【화성성역의궤】에 벽돌 하나, 기와 한 장까지 어떻게 만들어 몇 개를 썼는지 적혀 있습니다. 그 기록대로 1975~1979년에 되살린 점을 인정받아 1997년 12월에 등재됐어요. 보통은 현대에 복원한 유산이 등재되기 어렵습니다.

Q.정조는 왜 수원에 성을 쌓았어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긴 것이 시작입니다. 묘 자리에 있던 고을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새 도시를 짓게 됐고, 그 도시를 두른 것이 화성이에요. 군사 방어와 상업 도시를 함께 노린 성입니다.

Q.아이와 가도 좋아요?

성곽길은 유모차로 다니기 어려운 구간이 있습니다. 계단과 경사가 섞여 있어요. 아이와 가신다면 연무대 쪽 평지 구간과 화성어차를 묶는 편이 낫습니다. 활을 쏘아 보는 국궁 체험도 연무대에 있어요.

Q.경기도의 다른 곳도 보려면?

남한산성은 같은 '서울을 지키던 성' 이고 차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경기도 전체를 한 번에 훑으시려면 아래 '같이 읽을 글' 의 경기도 가볼만한곳 글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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