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문역에서 나오면 붉은 벽돌 담이 먼저 보입니다. 그 안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에요.
마당에 들어서면 벽돌 옥사가 줄지어 섭니다. 크고, 조용합니다. 그런데 ★ 지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1987년에 이 자리의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으로 옮길 때 옥사는 모두 열다섯 동이었어요. 그중 제9옥사부터 제13옥사까지 다섯 동과 나병사, 사형장을 남겼습니다. 국가유산포털에 그렇게 적혀 있어요.
셋 중 둘은 헐렸습니다. 지금 걷는 마당의 잔디밭이 그 자리예요.
이 글은 【누가 왜 지었는지】부터 봅니다. 그다음 어떻게 썼는지, 끝으로 그 뒤 어떻게 됐는지로 갑니다. 요금과 관람시간은 글 아래에 확인한 날짜와 함께 적어 두었어요.

옥사 벽에 걸린 태극기 — 마당에서 본 전경 · 사진 한국관광공사 · © 다님 9기 김덕식
먼저 요약하면
📌 정보 확인일 2026-09-21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공식 안내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 항목 | 내용 |
|---|---|
| 문 연 날 |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
| 사적 지정 | 1988년 2월 27일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 41,312㎡ |
| 역사관 개관 | 1998년 11월 5일 |
| 남은 시설 | 제9~13옥사 · 나병사 · 사형장 · 여옥사 · 지하 체벌방 |
| 주소 |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 안) |
| 가는 길 | 수도권 전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걸어서 몇 분 |

붉은 벽돌 옥사와 담장, 뒤로 보이는 인왕산 ·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한제국 말이었습니다. 일제의 강압으로 세워진 감옥이고, 문을 연 날은 1908년 10월 21일이에요.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습니다.
처음 규모는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작았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적은 숫자가 청사와 부속건물 80평, 감방과 부속건물 480평입니다. 수용 인원은 약 500명이었어요.
국가유산포털은 이곳의 시대를 1907년으로 적습니다. 백과사전과 관광공사는 1908년 10월 21일 개소라고 하고요. 짓기 시작한 해와 문을 연 해가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못 박아 적은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두 숫자를 나란히 두는 게 맞겠어요.

옥사 사이 마당 — 벽돌 건물 두 채와 긴 옥사 · 사진 한국관광공사
감옥 하나의 이름이 이렇게 자주 바뀌는 일은 드뭅니다. 바뀐 이유가 곧 이 나라의 연표예요.
1912년 9월 3일에 【서대문감옥】이 됐습니다. 수용 인원이 넘쳐 마포 공덕동에 새 감옥을 지으면서, 그쪽에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을 넘기고 이쪽이 지명을 따 간 겁니다.
1923년에 【서대문형무소】, 1946년에 경성형무소, 1950년에 서울형무소, 1961년에 서울교도소, 그리고 1967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였습니다. 광복 뒤에도 이 자리는 계속 감옥이었어요.

옥사 복도 — 감방 문이 줄지어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정원이 500명이라고 했지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 3,000여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중 시위 관련자가 1,600여 명이었어요. 정원의 여섯 배입니다.
1938년의 수용 인원은 2,763명으로 적혀 있습니다. 3·1운동 때만 반짝 넘친 게 아니었어요. 그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감방 문 앞에 서면 안이 들여다보입니다. 한 칸의 크기를 눈으로 재 보고 나서 저 숫자를 다시 떠올려 보시면, 이 글의 어떤 문장보다 정확하게 와닿을 겁니다.

전시 패널 — 이곳에 갇혔던 사람들의 기록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시관 벽에 사람들의 얼굴과 기록이 줄지어 붙어 있습니다. 그중 한 장이 【이재명】(1887~1910)입니다.
1909년 12월 22일 이완용을 공격한 의거로 붙잡혔고, 1910년 9월 30일 경성감옥에서 사형으로 순국했다고 패널은 적습니다. 감옥이 문을 연 지 채 2년이 안 된 때예요.
그 옆으로 김원봉과 이은숙 같은 이름이 이어집니다. 전시실 한쪽에는 영상이 돌아가고, 벤치에 앉아 볼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두었어요.

거울 벽에 수형기록표가 빼곡히 걸린 전시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역사관에서 가장 오래 서 있게 되는 자리입니다. 사방이 거울인 방에 【수형기록표】가 빼곡히 걸려 있어요. 카드마다 얼굴 사진 한 장과 이름이 있습니다.
거울이 사방이라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보다 훨씬 많아 보이게 만든 장치예요. 몇 장인지는 세어 보지 못했습니다.
한 장 한 장이 한 사람입니다. 이름을 읽다 보면 걸음이 느려져요. 그냥 서 있게 됩니다.
1916년에 지은 【지하 체벌방】이 발굴돼 보존돼 있습니다. '유관순 굴'이라고 부르는 자리예요.
여성 수감자들이 있던 【여옥사】는 따로 복원했습니다. 2011년에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3년 4월 1일 문을 열었어요. 유관순 열사가 갇혀 있던 8호 감방을 되살려 관련 자료를 전시합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우내 만세운동을 이끌다 잡혔고, 갇힌 뒤에도 옥중 만세운동을 했어요. 고문과 영양실조로 【열여덟】에 순국했습니다.

옥사 외벽 — 담장 너머로 아파트가 보입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 갔습니다. 감옥의 시간이 그때 끝났어요. 여든 해 가까이였습니다.
비워진 땅을 두고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옥사 【열다섯 동 가운데 다섯 동】(제9~13옥사)과 나병사, 사형장을 남기기로 했어요.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따진 결과였다고 국가유산포털은 적습니다.
1988년 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됐고, 그해부터 공원 조성이 시작됐습니다. 탑골공원에 있던 3·1운동기념탑을 이곳으로 옮겼고, 1992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문을 열었어요.
역사관이 지금 모습으로 개관한 건 1998년 11월 5일입니다. 담장 너머로 아파트가 보이는 자리에, 이 건물들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역사관은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습니다. 같은 공원에 독립문이 서 있고, 그 앞에 영은문 주초가 남아 있어요. 순국선열추념탑과 독립관도 한자리입니다.
독립문은 오랫동안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공원을 다시 꾸미면서 개방됐습니다. 역사관을 보고 나와 걸어서 이어 보실 수 있어요.
공원 자체는 상시 개방이고 무료입니다. 요금을 내고 들어가는 건 역사관 쪽이에요.
월요일에 쉽니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 당일, 추석 당일은 휴관합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 화요일에 쉬어요. 입장 마감은 문 닫기 30분 전입니다. 서울 안이라 마음 편히 잡기 쉬운데, 이 두 가지에 헛걸음하는 일이 잦습니다.
| 항목 | 내용 |
|---|---|
| 관람 시간 | 3~10월은 09:30~18:00, 11~2월은 09:30~17:00입니다. 입장 마감은 30분 전이에요. |
| 관람료 |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6세 이하 유아는 무료이고 경로우대자와 장애인, 국가유공자도 무료예요. 서대문구 주민은 1,500원입니다. |
| 얼마나 걸리나 | 옥사와 전시관을 차분히 보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쯤 걸립니다. 독립문까지 걸어서 보려면 삼십 분쯤 더 잡으세요. |
| 아이와 함께라면 | 고문 관련 전시가 있어 어린아이에게는 버거울 수 있습니다. 옥사와 마당, 수형기록표 전시실 위주로 도는 것도 방법이에요. 역사관은 초등학생·청소년·가족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합니다. |
| 해설 | 도슨트 해설이 있습니다. VR 관람도 운영해요. 시간은 방문 전에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 가는 길 | 3호선 독립문역에서 걸어서 갑니다. 차로 가신다면 공원 주차장을 쓰시되 주말에는 붐빕니다. |
Q.지금 남은 옥사가 전부인가요?
아닙니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의왕으로 옮길 때 옥사가 모두 열다섯 동이었고, 그중 제9~13옥사 다섯 동과 나병사, 사형장을 남겼습니다. 나머지는 헐리고 지금은 마당과 잔디밭이에요.
Q.언제 지어졌어요?
문을 연 날은 1908년 10월 21일이고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습니다. 다만 국가유산포털은 이곳의 시대를 1907년으로 적어요. 짓기 시작한 해와 문을 연 해가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분명히 적은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Q.왜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나요?
1912년에는 마포 공덕동에 새 감옥이 생기면서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을 그쪽에 넘기고 서대문감옥이 됐습니다. 그 뒤로는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바뀌었어요. 광복 뒤에도 감옥으로 계속 쓰였습니다.
Q.유관순 열사가 갇힌 곳을 볼 수 있나요?
여옥사 8호 감방이 복원돼 있습니다. 2011년에 원형 복원을 마치고 2013년 4월 1일 문을 열었어요. 1916년에 지은 지하 체벌방도 발굴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Q.휴관일이 언제예요?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 당일, 추석 당일입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 화요일에 쉽니다.
Q.독립문도 같이 볼 수 있나요?
네. 같은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독립문이 있고 영은문 주초가 그 앞에 남아 있습니다. 순국선열추념탑과 독립관도 같은 공원이에요. 공원은 상시 개방이고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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