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강화도 전등사 (2026) — 입장료는 2023년에 없어졌습니다

근교 나들이

by 나들이지기 2026. 9. 20. 11:45

본문

반응형

강화도에 절이 하나 있는데, ★ 절에 가려면 먼저 성문을 지나야 합니다. 절이 산성 안에 통째로 들어앉아 있어요.

이 배치가 우연이 아닙니다. 조선이 【왕조실록을 맡겨 둔 곳】이 여기였거든요. 섬이고, 산성 안이고, 그 안을 절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창건은 서기 381년으로 전해집니다. 관광공사 자료가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으로 적고 있어요.

요금 이야기도 먼저 해 두겠습니다. 검색하면 아직 '어른 4,000원' 이 걸리는데, ★ 전등사 입장료는 2023년 5월 4일부터 없습니다. 돈 내는 건 주차뿐이에요. ★ 소형 3,000원. 걸어 들어가면 한 푼도 안 듭니다.

성벽에 난 돌문. 이 아치를 지나야 절이 나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먼저 요약하면

  • 【입장료 무료】(2023년 5월 4일부터) · 관람 시간 09:00~17:30 · 주차 소형 3,000원 · 대형 8,000원.
  • 창건이 서기 381년으로 전해집니다. 현존하는 한국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라고 관광공사 자료가 적고 있어요.
  • 경내에 정족산사고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실록 계통이 여기 보관돼 있었고, ★ 1910년에 일제가 서울로 실어 갔어요.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국보입니다.
  • 절을 감싼 삼랑성(정족산성)은 둘레 2.3km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자리예요.

📌 정보 확인일 2026-09-20 · 운영시간·요금·주차는 전등사 공식 홈페이지 관람안내 기준이에요. 바뀔 수 있으니 가기 전에 공식 채널에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기본 정보부터

항목 내용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창건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짐 — 처음 이름은 진종사(眞宗寺)
이름이 바뀐 때 고려 충렬왕 때, 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지금 건물 1614년(광해군 6) 화재로 전소 → 1621년 2월 재건
보물 대웅보전 · 약사전 · 범종
성 삼랑성(정족산성) 국가사적 · 둘레 약 2.3km · 정족산 해발 222m
문의 종무소 032-937-0125 (템플스테이 032-937-0152)

1절이 성 안에 있습니다

위에서 본 성벽. 숲을 가르며 능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등사를 두르고 있는 성이 【삼랑성】입니다. 강화도 남쪽 정족산(해발 222m)에 있어서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러요. 둘레는 약 2.3km예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를 하나씩 맡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사내 랑(郞) 자를 써서 삼랑성이 됐다고 해요. '세종실록지리지' 에도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은 토성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언제 쌓았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거친 자연 활석을 그대로 쓴 삼국시대 축성 기법이라 그 무렵으로 짐작할 뿐이에요.

성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 쪽 해발 75m 능선까지 지형을 따라 쌓았습니다. 그래서 ★ 북쪽과 남쪽의 높이 차가 큽니다. 남문으로 들어가느냐 동문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오르막 느낌이 꽤 달라요.

남문에는 문루가 있는데 ★ 1739년(영조 15)에 세우면서 '종해루' 라 이름 붙였습니다. 1764년(영조 40)에 성을 한 번 더 고쳐 쌓았고요.

2381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창건 연대가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집니다.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 세웠다고 해요.

그때 붙은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어요.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 때 지금 이 자리에 절을 지은 것이라고 관광공사 자료가 적고 있어요.

이름이 바뀐 건 고려 때입니다. 고려 왕실이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으면서 진종사를 크게 중창했고, 16년 뒤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이름을 전등사로 바꿨습니다.

'전등(傳燈)' 이라는 이름과 옥등 시주가 겹치는 셈이에요. 절 이름의 유래가 이렇게 또렷하게 남은 곳이 흔하지 않습니다.

3지금 서 있는 건물은 1621년 것입니다

대웅보전 정면. 처마 아래 공포가 촘촘하고, 위로 연등이 덮여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1,600년 된 절이라고 해서 건물까지 그런 건 아닙니다. ★ 1614년(광해군 6)에 불이 나 건물이 모두 탔어요.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다시 짓기 시작해 1621년 2월에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지금 보이는 대웅보전이 그때(1621년, 광해군 13) 세운 건물이에요.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됐어요.

크기로 압도하는 건물은 아닙니다. 대신 결구가 단정하고 조각 장식이 정교해서 조선 중기 건축물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는 평가를 받아요. 안쪽 닫집 장식이 특히 화려합니다.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 물고기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용궁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한 것이라고 전등사가 설명하고 있어요.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있습니다. 정면 3칸·측면 3칸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이고, 고려 말이나 조선 초의 석조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어요. 이 건물도 보물이에요.

【범종】도 보물입니다. 전등사에 범종이 둘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쪽은 【명부전 앞 종각】에 있어요.

4추녀를 떠받친 네 사람 — 이야기와 학설이 같이 있습니다

추녀 밑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조각. 네 귀퉁이에 하나씩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웅보전 앞에 서면 【지붕 네 귀퉁이】를 보시게 될 겁니다. 처마 밑에 무언가가 무릎을 세우고 앉아 지붕을 받치고 있어요. 서쪽 것은 두 손으로, 동쪽 것은 한 손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불탄 절을 다시 짓던 때,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아랫마을 주막 주모와 정이 들었다고 해요. 공사가 끝나면 함께 살기로 하고 돈을 맡겼는데, 끝나기 직전에 주모가 그 돈을 들고 달아났다는 겁니다. 분한 도편수가 주모를 닮은 상을 네 귀퉁이에 새겨 무거운 지붕을 이고 참회하게 했다는 이야기예요.

다만 ★ 이건 전설입니다. 학계에서는 나부상이 아니라 【원숭이 모양의 야차상】으로 보는 견해가 꾸준히 있고, 나찰로 보거나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와 엮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양쪽을 다 알고 보시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올려다보면서 '이게 사람인가 원숭이인가' 를 직접 가려 보시면 돼요.

5조선왕조실록이 여기 있었습니다 — 그것도 살아남은 그 한 벌이

경내 마당. 벚나무 옆으로 전각들이 이어집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절 마당에 정족산사고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이에요.

조선은 실록을 한 벌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러 벌을 찍어 서로 다른 곳에 나눠 두었어요. 한 곳이 불타도 기록은 남게 하려는 설계였습니다.

그 설계가 실제로 나라를 구했습니다. ★ 임진왜란 때 춘추관·충주·성주의 사고가 모두 불탔어요. 남은 건 전주사고 한 곳뿐이었습니다.

살아남은 한 벌도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어요. 1592년 6월, 일본군이 금산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은 태인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제 돈을 털어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13대 804권과 소장 도서를 정읍 내장산으로 옮겼어요. 벼슬도 없는 두 사람이 옮긴 책이 조선 200년의 기록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계통이 뒤에 강화로 왔고, 숙종 4년(1678)에 강화 사고의 책들이 정족산사고로 옮겨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전등사는 사고가 현종 1년(1660)에 세워졌다고 밝히고 있어요. 건물이 선 때와 책이 들어온 때가 다르게 적혀 있는 셈입니다.

왜 하필 여기였을까요. 섬이고, 산성 안이고, 그 안을 절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삼랑성이 고려 이후 개경과 한양을 지키던 성곽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자리가 이해돼요. 나라가 가장 중요한 기록을 맡길 곳으로 고른 조건이 그거였습니다.

6그 책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여기서 이야기가 근현대로 넘어갑니다.

★ 1910년, 일제가 정족산사고본 실록을 서울로 가져갔습니다. 규장각도서로 편입돼 조선총독부 관리를 받았고, 1928~1930년에는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다시 옮겨졌어요.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맡았고, 1990년에 서울대 규장각이 독립 기관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정족산사고본은 【국보】예요.

책이 떠난 사고는 ★ 1931년 무렵 폐허가 됐습니다. 비어 있던 자리를 1999년에 장사각 건물로 복원했어요. 지금 마당에서 보시는 건 그 복원된 건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이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 선비 둘이 지게로 옮겨 살린 책이, 섬의 절에 200년 넘게 맡겨져 있다가, 1910년에 실려 나갔고, 건물만 다시 세워졌다.

절에 와서 불전만 보고 나오면 이 건물을 지나치게 됩니다. ★ 경내 안내도에서 '정족산사고' 를 한 번 찾아보세요.

71866년, 프랑스군을 여기서 막았습니다

성에서 내려다본 강화 들판. 멀리 산줄기까지 트여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로 들어왔습니다. 전등사가 있는 이 성은 그때 전략적 요충지였어요.

★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이 삼랑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어요. 삼랑성은 병인양요 승전지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 일을 기념한 비가 지금도 서 있습니다. 【동문 쪽의 양헌수승전비】입니다.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예요.

그래서 관광공사 자료는 전등사를 【'호국불교 근본도량'】 이라고 부릅니다. 절 이야기가 곧 전쟁 이야기가 되는 곳이 흔치는 않습니다.

8입장료는 없고, 주차만 돈을 냅니다

경내를 덮은 연등. 색깔마다 소원을 적은 종이가 달려 있습니다 · 사진 한국관광공사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입장료는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니다. 전등사 공식 홈페이지 관람안내에 그렇게 적혀 있어요.

검색 결과에는 아직 ★ 유료 시절 정보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재 관람료 폐지 전에 쓰인 글들이에요. 요금 때문에 망설이셨다면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관람 시간은 09:00~17:30이에요.

돈이 드는 건 주차입니다. 소형 3,000원, 대형 8,000원이고 현금과 카드 모두 됩니다. 전등사는 주차료는 관람료 면제와 별개라고 못 박아 두었어요.

반려견과 같이 가실 수 있어요. 다만 목줄을 하고 동반서약서를 써야 합니다.

경내에 【죽림다원】이라는 전통찻집이 있습니다. 여름철 8:30~18:30, 겨울철 9:00~17:30이에요. 절을 한 바퀴 돌고 앉기 좋습니다.

9차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닿는 절이에요. 공식 '찾아오시는 길' 에 적힌 노선만 옮깁니다.

강화 시내에서는 70번 버스입니다. 【신촌이나 홍대】에서 출발하신다면 M6117 버스를 타고 구래역에서 70번으로 갈아타면 됩니다.

김포공항에서는 60-5번이 전등사 쪽으로 바로 와요.

내리는 곳은 '전등사 동문' 이나 '남문' 정류장이면 걸어서 10분, '온수리' 에서 내리면 15분입니다.

배차 시각은 평일·주말·공휴일이 다르고 자주 바뀝니다. 전등사 홈페이지 '찾아오시는 길' 에 시각표가 올라와 있으니 출발 전에 그것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입장료 4,000원' 이라고 적힌 글을 보셨다면

그건 2023년 5월 3일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전등사는 공식 홈페이지 관람안내에 '2023년 5월 4일부터 입장료 무료 적용' 이라고 적어 두었어요. 다만 【주차료는 그대로】입니다(소형 3,000원 · 대형 8,000원). 절에서도 '주차료는 관람료 면제사항과 별도' 라고 따로 밝히고 있습니다.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항목 내용
입장료 무료 (2023년 5월 4일부터)
관람 시간 09:00 ~ 17:30
주차 소형 3,000원 · 대형 8,000원. 현금·카드 모두 가능
반려견 동반 가능. 목줄 착용과 동반서약서 작성이 필요합니다
찻집 죽림다원 — 여름철 8:30~18:30 · 겨울철 9:00~17:30
대중교통 강화 70번 · 김포공항 60-5번. 신촌·홍대에서는 M6117로 구래역까지 간 뒤 70번 환승
같이 보기 삼랑성 성벽, 정족산사고, 동문 쪽 양헌수승전비 — 전부 경내와 성 안에 있습니다
놓치기 쉬운 것 정족산사고. 불전만 보고 나오면 지나칩니다. 안내도에서 이름을 찾아 가세요
대웅보전에서 볼 것 천장의 물고기 양각, 그리고 지붕 네 귀퉁이에서 처마를 받친 조각
문의 종무소 032-937-0125

자주 묻는 것

Q.전등사 입장료가 얼마인가요?

없습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니다. 검색하면 아직 유료 시절 정보가 걸리는데, 전등사 공식 홈페이지 관람안내에 무료로 적혀 있어요. 돈이 드는 건 주차(소형 3,000원·대형 8,000원)뿐입니다.

Q.몇 시까지 볼 수 있나요?

09:00부터 17:30까지입니다. 경내 찻집 죽림다원은 여름철 8:30~18:30, 겨울철 9:00~17:30이에요.

Q.정족산사고에 있던 실록은 지금 어디 있나요?

1910년에 일제가 서울로 옮겨 규장각도서에 편입했고, 1928~1930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을 거쳐 광복 뒤 서울대학교가 맡았습니다. 1990년부터는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어요. 정족산사고본 실록은 국보입니다.

Q.왜 하필 강화도에 실록을 두었나요?

섬이고, 산성 안이고, 절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랑성은 고려 이후 개경과 한양을 지키던 성곽이었어요. 조선은 실록을 여러 곳에 나눠 두었는데, 임진왜란 때 춘추관·충주·성주 사고가 다 타고 전주사고본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계통이 뒤에 강화로 왔어요.

Q.전등사가 정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가요?

한국관광공사 자료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고 적고 있습니다. 창건은 서기 381년으로 전해져요. 다만 지금 서 있는 건물은 1614년 화재 뒤 1621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Q.대웅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건 뭔가요?

네 귀퉁이에 무릎을 세우고 지붕을 받친 상이 있습니다. 도편수를 배신한 주모를 새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전설이고, 학계에서는 원숭이 모양의 야차상으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습니다.

Q.차 없이 갈 수 있나요?

갈 수 있습니다. 강화 70번, 김포공항에서는 60-5번입니다. 신촌·홍대에서는 M6117로 구래역까지 간 뒤 70번으로 갈아타세요. '전등사 동문'이나 '남문'에서 걸어서 10분입니다.

Q.반려견과 같이 들어갈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목줄을 채우고 동반서약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관련글 더보기